**필자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닙니다. 그저 조금 가볍게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시간을 가지고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 중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해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이다. 서랍에 창고에 옷장에 찬장에... 존재조차 있고 있던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그 물건들을 내가 소유하고 있었던 기간이 벌써 얼마나 되었는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분명 이건 나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산 것일텐데...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물건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예쁜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지만 나의 하루를, 인생을 든든하게 해주는 그런 것들. 아마 미니멀리즘을 결심하는 많은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넘어야할 산으로 생각할 것들. 그들은 그것들을 사진을 찍어두는 것으로 처분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사진을 비우고 물건을 소유하면 더 행복할텐데.. 

 

나는 이것들을 차마 처분할 수 없어. 나는 미니멀리스트로 살 수 없는 사람인가봐. 라는 결론에 닿는다고 한다. 솔직히 행복까지 비워서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나는 "내가 지금 꼭 필요한 것, 행복감을 주는 것"은 소비해도 괜찮다는 주의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가득 충전되는 행복이라면 이미 그 물건의 활용도는 충분할테니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런 저런 활용도를 빼고서, 그것을 활용하는 것만으로 이뤄질 환상적인 미래만을 꿈꾸며 소비하여 어느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 일단 사기만 하면 당장 파워블로거, 인플루언서가 될 것 같았던 화질 끝내주는 카메라라던가.. 매일매일 따뜻하고 고소한 빵을 만들어먹을 미래를 꿈꾸며 구매한 오븐이라던가.. 뭐, 다들 그런것 하나씩은 있을테니.

볼때마다 그런 미래의 내가 있는 것 같은 환상에 빠지지만, 그런 종류의 행복은 사실 그저 스스로에 대한 부담밖에 되지 않는다. 스스로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벌써 5년째, 10년째... 그 카메라가, 오븐이 그냥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그런 환상을 담은 물건들은 어쩐지 내일이라도 당장 활용해서 멋진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처분하면 아쉽고 돌아서면 또 생각날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그래서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려두고 '아, 역시 저건 처분하면 안돼'라고 말하는 순간 다시 5년 뒤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날 발견할 뿐이다. [사실 5년뒤에 진짜로 써야할때 더 좋은 걸로 사도 된다.]

 

 

 

택배 상자가 쌓여가고 있다

 

요즘 우리집에는  택배 상자가 쌓여가고 있다. 다만 좀 다른게 있다면.. 배송된 택배상자가 아니라, 배송될 택배상자들이다. 택배 포장하는 실력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의 두 박스가 사실은 완전히 같은 박스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별로 과감하게 버리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 물건을 안보이는 곳에 숨겨두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늘 눈에 띄는 곳에 두고 대화한다. 만약 내가 이 물건이 진짜로 필요한 순간이 온다고 해도, 그게 1년뒤라면 1년동안 여기에 보관해두는 것보다는 지금 꼭 필요한 누군가가 쓰는게 더 좋지 않을까? 내가 이 물건이 필요해졌을때 똑같은 물건을 구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것을 대용할 또는 더 좋은 기능의 물건이 분명 있을텐데..

 

그렇게 하나 하나 비우다보니, 한달 전, 두달 전에는 비우면 큰일날 것 같았던 물건들도 하나씩 내 품을 떠나고 있다. 일단 택배를 싸고나면 나도 몰랐던 짐을 덜어낸 것처럼 홀가분한 물건도 있고 내가 맞는 선택을 한걸까 배송하는 그 순간까지 머뭇거리게 되는 물건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건 일단 물건을 보내고 나면 생각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사실이다.

 

저 박스도 지금 남은 것으 4,5배가 사라졌다

 

사실은 사용하지 않지만, 오래오래 망설여지는 물건을 결국 처분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리고 끝끝내 질척이던 그 거짓된 환상의 미련이 걷히는 순간의 감정은 늘 짜릿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물건이 오래도록 놓여있던 그 자리에 남겨진 공허는 익숙해지고 그곳에 어떤 물건이 놓여있었던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이 온다.

 

결국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확실하게 애정할 수 있는 만큼의 물건만을 소유해도 우리는 불행해지지 않는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