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던칸 존스
개봉 : 2011.05.04
관람 : 2023.09.15
작성일 : 2023.09.15
최종수정일 : 2023.09.15
스포일러 주의
영화란 한정된 시간안에 여러가지 사건의 순간들을 박제해두는 예술장르이다. 그러다보니 무대예술처럼 순간 순간의 돌발상황에 맞춰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개봉 직전까지 최선의 연출과 연기, 각종 무대요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한계성(?) 때문일까. 왠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고서야 나는 영화의 짧은 러닝타임을 못견디게 지겨워하는 편이고, 큰 소리로 재생되는 영화관의 사운드에 고통받는 특이 체질을 타고 태어났다. 그런 이유로 내가 영화를 보는 일은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어쩌면 OTT 서비스들의 활성화는 나에게 많은 시간과 돈을 아껴주는 기회로 작용하는 것도 같다. 적어도 돈과 시간을 들여 영화관까지 갔다가 도입부부터 "읽혀버린" 결말까지의 사건 진행에 집에나 갈까하는 번뇌의 순간을 완전히 없애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OTT 서비스를 활용해 영상을 보면 원하는 때에는 멈추어두고 충분히 생각을 할 수 있고, 이것저것 적거나 상상을 하면서 관람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더할 나위 없겠다.
영화에서 90분의 러닝타임이 긴건지 짧은 건지 모르겠다. 뮤지컬이나 연극의 러닝타임에 너무 길들여진 탓이다. 여하건, <소스 코드>의 93분은 '엥? 벌써 끝난다고?'라는 생각을 남길 정도로 순식간에 휙 지나갔다. 역시 무대공연과 비교해서는 너무 빠른 전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특징과 별개로 간만에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은(??) 영화를 만났다,
영문도 모른채 같은 상황과 죽음을 반복해야 한다면
일반적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는 '생명체'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이 나와 무관한 누군가의 것이더라도 고통과 아픔, 슬픔 따위의 감정을 겸허하게 된다. 그런데 그 죽음이 나의 것이라면? 어느날 눈을 뜨니 처음보는 누군가의 몸에 갖혀 있고, 8분이 지나면 어김없이 '나는 죽는다'라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면? 그리고 그 죽음을 앞둔 8분이 영원히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범인이라면 누구든 미쳐버리기 딱 좋은 상황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소스 코드>의 주인공 콜터 스티븐스는 불현듯 눈을 뜬 순간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기억나는 것은 자신이 대위이며, 아프가니스탄에서 헬기를 모든 임무를 수행중이었다는 사실뿐이다. 분명 자신은 전쟁중이었는데, 자신의 동료들은 어디가고 혼자서 차갑고 어두운 기계 속에 묶여 있는 것일까. 바로 직전 낯선 곳에서 열차 폭발을 경험하고 깨어난 콜터 앞에 굿윈이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정확한 상황 설명없이 무작정 그에게 곧 이어 찾아올 연쇄 테러의 시작을 알린 열차 폭발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라는 명령만 차갑게 반복한다. 결국 영문도 모르고 다시 8분의 시간으로 돌려보내진 콜터는 주변의 단서들을 모아 폭탄과 관련된 진실에 조금씩 가까워져 간다.
당신의 친구는 이미 두 달 전에 죽었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라는 근원적인 의문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콜터는 자신에 대한 단서를 모아가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8분의 세상에서 자신의 동행인 크리스티나에게 '콜터 스티븐스'의 이야기를 자신의 친한 친구로 위장해 들려주고, 그녀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듣게 된다. "그는 죽었어요. 두 달 전 임무중 사망했대요" 그 말은 콜터를 완전한 혼란 속에 빠트리게 된다.
그는 분명 살아있었고, 자신은 2달 간의 기억은 잃었지만 현재 연쇄 테러를 막기 위한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자신이 죽었다면 지금 자신은 무엇이란 말인가.
현실의 시간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에 대해 묻는다. 지금은 신경쓰지 말고 임무에만 집중하라며 차갑게 답하던 굿윈은 결국 '그의 뇌 일부가 살아있고, 현재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은 가상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곤란해 하는 굿윈과 흥분한 콜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소스 코드' 프로젝트의 총책임자 닥터 러틀리지는 '소스 코드'에 대한 좀더 상세한 설명을 하며 "가혹한 말이지만 자넨 시곗바늘일세"라는 말로 일갈한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말은 러틀리지가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엿보게 한다.
대부분 죽는 것보단 이 임무를 택하지. 조국에 대한 충성을 이어갈 기회니까
소스 코드는 복잡한 양자역학 기술을 활용해 만들어진 프로젝트로, 뇌의 회로 중 사후에 잠깐 열려 있어 이용이 가능한 부분과 8분의 단기 기억를 활용해 시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당시 사망한 숀 펜트리스와 콜터의 호환성이 높은 수준으로 좋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소스 코드는 단 8분 간만 존재하는 세상이며, 현실과는 완전히 분리된 가상현실이며 8분 이후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러틀리지는 콜터에게 이 임무만 완료한다면, 그의 바람대로 죽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이 공포스러운 8분의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타인의 가상현실, 하지만 나에게는 지극한 현실
각종 SF장르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특히나 지금처럼 가상현실이 더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게 된 시대에는 더더욱. 이러한 상상을 담은 작품은 드물지 않다. 사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누군가의 게임 속이거나 개미집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 그렇다면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는 나의 의지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조종에 따라 이러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러한 상상히 다소간의 무력감을 불러온다면, '소스 코드' 세상은 모종의 공포감까지 불러일으킨다.
말하자면 웹소설들에서 종종 활용되는 '자신이 사실은 소설 속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뭐, 그런 스토리. [음, 그것보다는 빙의 쪽이 좀 더 가까운 건가..?] 콜터에게는 (당연히) 사후 두 달간의 기억이 없다.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직접 동의를 한 적이 없으며, 그의 실험 참가는 군사법원에서 승인한 일이라고 한다.
그는 죽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다. 겨우 뇌의 일부가 살아있을 뿐이지만, 그의 상반신은 고스란히 남아 각종 기기들에 의지한채 여전히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그는 (죽었다고 하나)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 기계의 일부가 된 것이다. 가상에서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실존하는 가상인물인 것. 그렇다면 그에게는 "인권"이라는 것이 적용되는가. 그가 '생명체'로의 기억과 감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 속에서 콜터의 처우는 그저 기계부품에 불과하다.
콜터는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오직 실험자들의 결정에 따라 8분짜리 소스 코드로 보내지고, 그곳에서 죽음을 반복하며 '그들'이 명령한 임무를 수행해나간다. 한낱 기계인 그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은 허용되지 않고, 임무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쉬는) 시간조차 낭비이다. 이 영화 속 콜터가 처한 상황이 단순히 (애초에) 창작된 가상인물이 진실을 알게된 것이 아닌, 원래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가상세계로 밀어넣어져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하고 차갑게 다가온다.
콜터는 그들이 제시한 임무를 무사히 완수해냈다. 자신과 열차를 타고 있던 승객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지만, 연이어 찾아올 테러의 희생양들은 모두 살린 것이다. 임무를 마친 콜터는 러틀리지에게 둘 사이의 거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러틀리지는 프로그램을 위해 재고해주면 좋겠다며 말을 얼버무린다. 콜터는 자신 역시 생각이 바뀌었다고 답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동상이몽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 굿윈의 결심
러틀리지에게 콜터는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었고, 자신이 고안한 장치인 '소스 코드'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속품일 뿐이었다. '소스 코드'의 첫번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러틀리지는 앞으로 자신을 찾아올 부와 명예를 꿈꾸며 (콜터와의 약속을 무시한 채) "데이터를 지우고 초기화를 하라"고 직원들에게 명령한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해오던 굿윈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차가운 모습으로 콜터에게 임무를 명령하지만, 러틀리지의 그에 대한 처우를 지켜보면서 무언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콜터는 자신을 다시 '소스 코드' 속으로 보내달라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살리고 싶다고 요청한다. 하지만 연구소에서는 '소스코드'는 그저 시공간이 이동된 가상현실이며 '프로그램'일 뿐, 8분이 지나면 없어진다는 답을 할 뿐이었다. 콜터는 굿윈에게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소스 코드'로 보내달라고, 그리고 8분의 시간이 끝나면 생명유지장치를 꺼달라고. 결국 굿윈은 직업적 소명을 내려놓고 자신의 마음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더이상 열차 폭발 사고는 없다. 소스 코드로 돌아온 그가 폭탄을 해제하고 범인을 신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숀의 이름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려 그의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굿윈에게 문자도 보낸다. 함께 열차를 타고 있던 개그맨을 도발해 열차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키스를 하며 살아있다는 기분 속에서 '소스 코드'의 8분은 종료된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다르게 8분 1초는 찾아왔고, 화요일의 해는 밝았다. 그곳에는 왜 '소스 코드'를 실험할만한 [사건]이 터지지 않느냐고 답답해하는 러틀리지가 있었고, 숀의 모습이 아닌 콜터의 모습을 한 숀 펜트리스가 크리스티나와 함께 다정히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굿윈에게 "미래의" 콜터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도착한다.
이걸 읽는다면 소스 코드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낸 거겠죠. 과거 8분만 재생한댔지만 그렇지 않아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겁니다.
굿윈은 다시 장치 속에서 대기하고 있는 콜터 앞에 서 있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소스 코드'를 움직이는 부품이 '콜터 스티븐스'인 이상 "소스 코드의 위대함을 증명할 위기"는 영원히 러틀리지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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