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키우는 행위'에는 알 수 없는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다. 처음에 그냥 호기심에, 키워 먹을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화분 하나를 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식물을 얼마나 잘 죽이느냐] 하는 문제와 관계없이 급 불어나있는 개체수를 확인하게 된다. (실제로 내 친구가 그랬다.) 원래부터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돌보는 일을 좋아히기도 했지만, 독립을 하면서 나의 본격적인 식집사 라이프는 시작되었는데... 특히나 그것에는 '트리플래닛'이라는 게임사였다가 아니어진 반려식물 분양업체의 힘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하겠다.

 

열악한 환경속에서 메리골드가 개화한 사진

 

그렇게 많은 식물들이 내 손을 거쳐서 떠나가기도 하고, '니가 아무리 악을 써봐라 내가 죽나'하고 버텨서 아직도 싱싱하게 같이 살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올해의 '악바리 상'의 수상초(?)는 메리골드로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뿌리쪽 줄기는 다 죽은 것 같아보이는데 기어이 꽃을 피워내고야 말았다. 장하다를 넘어서 '징'한 수준의 생명력이라고 하겠다[...]

 

여튼 식물 돌보기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식테크'로 향했지만, 선물받았던 '별빛 벤자민'이 일,이년 사이에 일반 벤자민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수준으로 흰색을 잃어버리는 꼴을 보며 선뜻 시도도 안하고 있었다. 일단 식테크용으로 키워지는 식물종들은 기본적으로 들여오는 가격부터 장난이 없다는 것도...

 

그러다 우연히 텀블벅에서 '한 화분당 100뿌리 가량의 박쥐란이 태어날 예정인 포자가 심겨있는 '마이크로팜'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묘한 오브제를 가진 이 미술품이 내 취향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악뮤의 이찬혁 군이 엄청난 크기의 박쥐란을 구매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고, 무엇보다 모종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수준의 포자 상태에서부터 천천히 키워 추후에는 식테크까지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굉장한 흥미를 끌었다.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박쥐란의 종은 '힐리'와 '코로나리움'의 두 종이었고, 두 종을 다 데려오려다보니 여차처자 두 배의 리워드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100뿌리의 예비박쥐란이 담긴 화분이 총 4포트, 어느 정도 성장한 모종화분이 4포트가 오게되는 어마어마한 사단이 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꽤 초기에 펀딩을 참여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스크레치골을 달성, 정신을 차리고보니 각 종당 약 20포기의 모종이 추가되어 갑자기 총 40포기의 박쥐란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게 되어버린 것.

 

펀딩에서 리워드로 받은 박쥐란 모종

그러니까 종이 박스에 담긴 아이들이 내가 알고 있던 리워드, 윗쪽 아이스박스 뚜껑에 담아 놓은 아이들이 갑자기 늘어난 식구. 이리하여 계획에도 없이 너무 이르게 박쥐란 모종이 많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텀블벅 펀딩하고 택배용 플라스틱박스에 리워드 택배 처음 받아본 사람] 애초에 얼리버드 혜택으로 1+1이 적용되었던 리워드이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지불한 금액의 250% 정도의 리워드를 받게 된 것이다. 분명 판매자님께 감사할 일이 맞기는 한데(...) 그래도 당황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단 말이죠.

 

임시로 어린 박쥐란들을 심고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준 사진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자란 개체들은 투명 디저트컵에 한 포기씩 심어서 밀폐재배하도록 안내를 받았지만, 따라온 디저트컵은 9개 뿐이고 안그래도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컵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마당에 일부러 플라스틱컵을 구매하는 것도 어이없는 상황인 것 같아서, 걍 임시로 정리해두었던 아이스박스 뚜껑에 상토를 조금 담고 두 종을 대충 분리해 (제대로 분리한건지 모르겠다..) 심었다.

 

코로나리움은 잎이 젖으면 상할 수 있다고 하기도 하고, 집에 분무기가 없어서... 굴러다니던 물약병으로 일일이 물을 주입해주는 정신나간 짓 + 집이 건조한 편이라 증발량이 많아 뭐라도 덮어야겠다는 생각에 산적꼬치와 비닐랩으로 지은 비닐하우스(는 그날 밤 정원의 요정에게 짓밟힘[..?])까지 정말 이틀간 혼신의 힘을 다 갈아넣었다.

 

아, 정원의 요정이 궁금하다고요?

어항보는 고양이
우리집 작은 정원사입니다. 풀 가꾸기(라고 쓰고 집어뜯기)를 좋아하는 고양이죠.

문제는 원래 빈 디저트컵이 마이크로팜에서 어느정도 자란 개쳬를 옮겨 심는 용도로 제공된 것으로 하는데... 페트병 두 개에 아이스박스 뚜껑까지 동원해서 겨우 모종들을 처리한 상황이라 스페이싱을 할 화분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다이소에가서 생선저장용기(..?!) 두 개를 사온 후 이미 왕창 자라버린 마이크로팜의 개체들을 스페이싱해주었다. 초밥 포장용기처럼 뚜껑이 볼록하게 올라와있으면 좋을텐데.. 그냥 반찬통이라서 정말 잠깐동안만 심어두었다가 다시 널찍한 곳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것이 매우 함정인 함정. 분명 리워드를 수령하고 최소 3,4달 이후에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때 아닌 박쥐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박쥐란 모종 스페이싱

그리고 이게 아까 그 비닐하우스를 제외하고 심고, 스페이싱한 박쥐란 대가족 3일차. 이걸 내내 바닥에다 두고 키울 수도 없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ㅋㅋㅋ 트레이라도 하나 구해야하나.. 하는 생각에 빠져있다.

 

그리고 오늘 상태를 살피다가 문득 발견한 굉장한 의문점.

박쥐란 화분에 곰팡이가 핀 모습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이 화분에만 곰팡이가 피었느냐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어린 박쥐란들은 습도가 높은 상태로 키우기 때문에 곰팡이 방지법에 대한 안내도 받은 상태이긴하다. 하지만 다른 화분도 아니고 이 화분에서 곰팡이가 생긴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단 말이지.. 왜냐하면 이 화분은 밀폐를 하지 않은 상태이고, 흙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닌 업체에서 살균소독 후에 보내준 흙을 사용했으며, 이미 앞선 작업으로 물을 어떻게 줘야 과습위험을 벗어날 수 있는지 학습이 된 상태라 물도 흠뻑주지 않은 상태였다. 쉽게 말해 지금 박쥐란이 심겨있는 화분 중 가장 습도가 낮은 상태인데... 대단한 걸, 곰팡이?

 

화분에 생긴 곰팡이는 제거도 쉽지 않은데, 몇일전 이사를 한 애들을 또 이사를 시킬수도 없고 참.... 어쩐지 박쥐란은 그냥 막 데려다 키우는 화분들에 비해서 까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소처럼 알코올을 뿌리기도 뭣하고(..) 황당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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