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세상이었다. 설치미술 전시는 종종 반가운 마음으로 보러다녔고, 서울 근교에 살기 시작하면서는 종종 당일치기로 연극을 보러 다녀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뮤지컬은 오페라라는 장르와 더불어 굉장히 상류층의 문화인 것 같고, 어려운 장르라는 편견이 있어 애초에 시도조차 해보려고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명백하게 따지자면 내 첫번째 뮤지컬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시절 온 가족이 같이 보러갔던 어린이 뮤지컬 알라딘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것을 기억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때 구매했던 MD인 알라딘 커플빨대 컵이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집에서 사용되어 왔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오래전인지 구글링으로도 찾아볼 수 없다. 하긴 필카시절이었으니까...]
그리곤 끝인 줄 알았는데 곰곰하게 생각해보니 대학을 다닐 당시 학교에서 내한 뮤지컬 '마타 하리'의 티켓을 지원해줘서 친구의 동생(?)과 티켓을 신청해서 보러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 때문에 역시 뮤지컬은 어려워...라는 인식이 박혔던 것도 같다./나는 아직도 내한 뮤지컬을 선호하지 않는다..)
굉장히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것 치고는 서브컬처에 대한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이었고, 종종 보러다녔던 연극 공연조차도 '대학로'라느니, '재관'이라느니 그딴건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영화도 잘 보지 않는 내가 연극 장르에는 다소 우호적이었던 것은 CG나 후가공을 할 수 없는 연극에서는 아무리 수위가 높다고 해도 소름끼칠만큼 잔인한 장면을 표현할 수 없다는 공간적 제약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던 내가 대관절 소위 말하는 입덕부정기도 스킵하고 난 연뮤덕이오라고 선언할 수밖에 없어진 사건은 아주 우연히 일어났다. 알바를 구하다가 정신차리니 취업을 해버리고, 그렇게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여러 전시들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이유없이 그냥) 좋아하는 헬렌 캘러를 주제로 한 뮤지컬 티켓이 매우 저렴하게 나와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올린 '극단걸판'은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극단이다.) 그렇게 슬쩍 시도해봤던 것이 뮤지컬 장르의 장벽을 크게 낮춰주었고, 나의 문화 정보수집의 범위는 넓어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내가 뮤지컬에 미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놀라운 알고리즘의 힘에 의해 네이버의 구석구석에서 자꾸 시데레우스라는 작품을 광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리처돌이었던 나는 계속 그 작품에 끌렸지만, (어떠한 이유로) 티켓팅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27년 인생 제대로 된 덕질이라고는 해본적도 없는 나를 한달에 60만 원을 망설임없이 지르게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 트리거는 어쩌면 그때쯤 다시 스물스물 나타나기 시작하는 정신적 이상증상이었던 것 같다.
남들은 취업을 하고 나면 일단 한 고비를 넘기고 많은 불안에서 벗어난다고 하지만, 나는 취업을 하게 되면서 몇 년 전부터 문득문득 예감하고 있었던 우울증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때보다는 약간 낮은 수위의 이상증상이 보이는 순간 나는 정신과를 찾았고, 상당한 수준의 만성우울증을 진단받게 되었다. 그것이 7월 1일, 시데레우스가 총막을 한 다음 날이었다. 결국 이미 위태위태했던 6월, 내가 스스로 이상증상을 발견하고 병원을 찾기까지 내 목숨을 지켜준 것은 바로 시데레우스였던 것.
6월 한 달간 내가 본 시데레우스는 총 12회. 흔한 아이돌 이름 하나도 잘 모르는 내가, (누구나 알만한 대극장 뮤지컬 배우도 아닌) 대학로 소극장 배우들의 이름을 달달 외우고 다니게 된 시작이었다. [아, 생각났다... 나 이때 사진 html로 코드짜서 서버형식으로 저장해놨구나... 다행이다. 순간 식겁했네..] 덕질을 시작부터 회전러로 시작해버린 광기의 물리과. 심지어 나 이때 케플러랑 갈릴레오 덕질도 같이 했다. [주변에서 또라이 취급했음..]
그렇게 광기의 2년을 보내고, 늙어버린(?) 몸뚱어리와 심해지는 우울증에 회사 출근도 힘들어지면서 대학로를 찾는 일이 드문드문 하게 되고, 그 와중에 코로나까지 찾아오면서 탈덕부정기를 쎄게 겪다가[입덕은 부정안했지만, 탈덕은 부정함] 결국 관객을 돈으로만 보는 여러 제작사들의 만행에 치가 떨려 점점 시들해진던 찰나, 랑에서 극장을 하나 구매하며 더이상 시데레우스를 내가 처음 느꼈던 그 감동으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기정 사실화. 완전히 흥미를 잃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지금은 굳이 비싼 돈 내가며 썩 좋지도 않은 자리에서 숨막히는 시간을 견딜 필요도 없고, 피터지는 피켓팅 현장에 뛰어들 필요도 없는데 (회전문 관객만 느낄 수 있는 재미는 못느끼지만) 배우들을 모공까지 볼 수 있는 고퀼의 온라인 공연만 주구장창 찾아보고 있다.
역시 나의 글 아니랄까봐 서론이 무진장 길어졌지만, 이 카테고리를 채울 글들은 내가 이전 블로그에서 써 놓았던 후기들과 장문의 글로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개인적인 티켓북이나 인스타에 적어두었던 간략후기를 참고해서 가능한 모든 작품들에 대해서 차근차근 후기를 쌓아갈 예정이다.
2019년 나의 관극 일지
[오프라인]
01. 04월 05일 20시 00분 뮤지컬 어린왕자 루이스 초이 / 이우종 / 김환희
02. 04월 06일 19시 00분 뮤지컬 헬렌 앤 미 송영미 / 원근영 외
03. 04월 07일 14시 00분 뮤지컬 어린왕자 루이스 초이 / 이우종 / 김리
04. 05월 10일 20시 00분 뮤지컬 최후진술 고유진 / 최민우
05. 05월 11일 15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고영빈 / 신성민 / 김보정
06. 05월 31일 20시 00분 뮤지컬 더 픽션 박규원 / 강찬 / 김준영
07. 06월 01일 15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고영빈 / 신성민 / 나하나
08. 06월 14일 20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박민성 / 정욱진 / 김보정
09. 06월 19일 20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박민성 / 신성민 / 김보정
10. 06월 20일 20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고영빈 / 정욱진 / 나하나
11. 06월 22일 18시 3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고영빈 / 정욱진 / 나하나
12. 06월 23일 15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정민 / 신주협 / 김보정
13. 06월 26일 20시 00분 뮤지컬 더 픽션 박유덕 / 강찬 / 박건
14. 06월 27일 20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고영빈 / 신성민 / 나하나
15. 06월 28일 20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박민성 / 신주협 / 김보정
16. 06월 29일 15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정민 / 정욱진 / 나하나
17. 06월 29일 18시 3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고영빈 / 신주협 / 나하나
18. 06월 30일 15시 0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박민성 / 신성민 / 김보정
19. 06월 30일 18시 30분 뮤지컬 시데레우스 정민 / 신성민 / 김보정
20. 07월 02일 20시 00분 연극 2호선 세입자 이진실 / 김태은 / 박주용 / 박소영 / 이주형 / 이종훈
21. 07월 19일 16시 00분 뮤지컬 메피스토 노태현 / 문종원 / 린지 / 정상윤 / 황한나 / 백시호
22. 08월 02일 20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강필석 / 서혜원 / 에녹
23. 08월 03일 15시 00분 뮤지컬 난설 정인지 / 유현석 / 유승현
24. 08월 06일 20시 00분 뮤지컬 난설 정인지 / 유현석 / 안재영
25. 08월 08일 20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강필석 / 이정화 / 정상윤
26. 08월 09일 20시 00분 뮤지컬 난설 하현지 / 유현석 / 안재영
27. 08월 10일 19시 00분 뮤지컬 난설 정인지 / 유현석 / 유승현
28. 08월 11일 14시 00분 뮤지컬 난설 하현지 / 백기범 / 안재영
29. 08월 14일 20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정욱진 / 서혜원 / 에녹
30. 08월 17일 15시 00분 연극 월화
31. 08월 17일 19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정욱진 / 강혜인 / 이용규
32. 08월 18일 14시 00분 뮤지컬 난설 하현지 / 백기범 / 유승현
33. 08월 18일 18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윤소호 / 이봄소리 / 이용규
34. 08월 21일 20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정동화 / 이정화 / 이용규
35. 08월 22일 20시 00분 뮤지컬 난설 정인지 / 백기범 / 유승현
36. 08월 24일 15시 00분 뮤지컬 난설 정인지 / 유현석 / 유승현
37. 08월 24일 19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정욱진 / 강혜인 / 이용규
38. 08월 29일 20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정욱진 / 강혜인 / 이용규
39. 08월 30일 20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정동화 / 이정화 / 이용규
40. 09월 01일 14시 00분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정욱진 / 강혜인 / 정상윤
41. 09월 06일 20시 00분 뮤지컬 루나틱 신서옥 / 이로건 / 김혜진 / 방보용 / 이정연
42. 09월 08일 14시 00분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정욱진 / 이예은
43. 09월 12일 14시 00분 뮤지컬 랭보 정동화 / 정상윤 / 이용규
44. 09월 12일 17시 30분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정욱진 / 최연우
45. 09월 13일 17시 20분 뮤지컬 김종욱 찾기 정재환 / 김다솜 / 우종웅
46. 09월 18일 20시 00분 뮤지컬 김종욱 찾기 추연성 / 김유진 / 손영우
47. 09월 19일 20시 00분 뮤지컬 난설 정인지 / 유현석 / 안재영
48. 10월 08일 20시 00분 뮤지컬 드라큘라 엄기준 / 김금나 / 소냐 / 이건영 / 최성원
49. 11월 06일 20시 00분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정욱진 / 이예은
50. 11월 27일 20시 00분 연극 엘리펀트 송 강승호 / 고영빈 / 이현진
51. 12월 14일 15시 00분 뮤지컬 루나틱 허윤혜 / 권혁선 / 이보라 / 박정수 / 박웅
52. 12월 15일 ??시 ??분 지니어스 권단 / 김진성 / 노석웅 / 슬기 / 안우주 / 엄태경 / 이보다미 / 이준일 / 정열 / 주붐
53. 12월 20일 20시 00분 뮤지컬 경종수정실록 정동화 / 박정원 / 김종구
[온라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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