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기간 : 2016.12.17 ~ 2017.03.05

공연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관람일 : 2016.12.28.14:00

작성일 : 2016.12.29

최종 수정일 : 2023.01.07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가 흔치 않게 대부분의 작품을 구매해서 읽은 작가이다.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1위'에 걸맞게 그의 작품들은 모두 놀라운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모 작품부터 갑자기 많은 그의 팬들이 그의 작품에 일종의 매너리즘을 느끼기 시작, 나 역시 이제는 굳이 찾아 읽지 않는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베르나르의 여러 작품 중 유일한 희곡 작품으로, 단 두 사람이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단순한 구성을 가지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많은 인기 연극들이 그러하듯 그 내용은 상당히 치밀하게 들어차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책으로 읽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실제 연극으로 본다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어, 이 작품의 발견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책으로 <인간>을 만났던 것도 벌써 꽤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인간>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라울은 저자의 여러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의 외형을 상상해 보곤 했고, 캐스팅 배우 중에서는 '오용' 배우님이 내가 상상한 라울과 가장 비슷했다. 하지만 내가 관람한 회차의 라울은 '고명환' 배우님, 사만타는 '안유진' 배우님이 맡아 연기를 보여주셨고, 내 머릿속의 라울과 사만타는 '고명환'과 '안유진' 두 사람의 모습으로 새롭게 자리 잡게 되었다. 정말 원작의 느낌을 너무 잘 살려주셔서, 책을 그대로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혼자서 20분 남짓 자료화면을 넘기며 발표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95분의 긴 시간을 아무런 자료없이 서로의 얼굴과 동작만 보면서 채워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단순한 무대장치와 달리 움직임이 많은 배우님들은 극의 초반부부터 땀을 비 오듯 쏟으며 무대를 누비셨는데, 마지막까지 표정 하나, 호흡 하나 변하지 않는 '열정'이 정말 뜨겁게 와닿는 95분이었다.

<인간>은 외계인이 마련한 '인간 우리'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인류의 마지막 한 쌍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서로 일면식조차 없던 두 사람이 자신들이 인류의 마지막 한 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인류는 이 우주에서 계속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며 인류를 심판하게 된다. 굉장히 날카로운 내용으로, 많은 생각을 남기는 과정들인데, 인간과 다른 동물 종의 관계, 인간의 본성, 이성과 감성의 묘한 균형 등을 떠올리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 모든 과정이 '인간의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진행된 것일 뿐이라는 잔인한 현실이 밝혀지게 된다. 하지만 정작 '인간 우리' 속의 두 인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의 중대한 의무를 위해 결의를 다진다는 것이 보다 많은 교훈을 전달해 준다.

 

책을 읽은 지가 너무 시간이 지나서, 극장을 나오면서 '원작의 내용이 이렇게까지 날카로웠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전자책으로 책을 결제해서 다시 읽어보았는데, 원작을 특별한 가감 없이 그대로 살려 만들어진 연극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극의 특별한 점은 바로 무대가 아니었을까. 보통 무대를 정면에 두고 한쪽 방향으로만 배치된 관람석을 통해 작품을 관람하게 되는 일반적인 공연들과 달리, 이 작품은 무대를 가운데 설치하고 정면과 후면으로 관람석을 두어, 무대를 관객들이 둘러싼 형태로 관측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즉, 우리가 '인간 우리' 속에 살고 있는 인류 최후의 인간을 관찰하는 외계인과 같은 위치에서 그들의 대화와 행동을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정말 <인간>이라는 작품의 특징을 잘 살린 무대가 아닐까.

 

인류든 다른 생물종이든 어느 한 종의 생성과 멸종을 그냥 자연의 흐름으로 보는 내 입장에서, 단순히 내가 인류의 마지막 한 쌍 중 한쪽이 되었다고 해서 종족보존의 의무를 가져야 한다는 강제성 자체가 나는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이야 마라로 인간의 오만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종족보존이라는 유전자의 목적에서 봤을 때, 보다 이성적으로 종의 보존이 유익한 결과를 낳는가를 스스로 묻고 답해가는 과정은 굉장히 신선한 발상이라 생각한다.

 

극의 전반을 구성하는 인간 종에 대한 재판보다는, 이 모든 과정을 단 한순간에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 외계인 아이들의 마지막 대화가 더 마음에 꽂힌다. 우리는 동물보호와 자연보호를 외친다. 이것은 이타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그것들을 우리의 의지에 따라 파괴하거나 보호할 수 있다는 오만함과,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한 이기심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한 없이 겸손을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 아닐까.

 

함께 생각해 볼 만한 영상이 있어 살짝 첨부해 본다. 인류 종의 '이타'와 '이기'.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가져올 수 있는 영상이지만 <인간> 작품과 더불어 생각해 본다면 많은 깨달음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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