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사용했던 다이어리와 2024년을 위해 준비한 다이어리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의로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한지가 벌써 몇 년일까.

이제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다이어리를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어, 쳇바퀴같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오늘의 한 문단을 뽑아내는 능력(?)이 생겼다. 물론 다이어리만 구입하고 작성한 날은 다 합쳐서 석달이 되지 않는 공백기도 몇 년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귀찮을 때도 일기는 쓰지 않으면 찝찝한 수준에 도달했다.

 

2023년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버렸는지,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언제였던지 잘 기억도 안날만큼 어영부영 한 해를 마쳤다. 2024년을 앞둔 마지막 금요일에야 그것을 인지하고 급하게 (간만에) 바보사랑을 통해서 새로운 다이어리를 구입했다. 예전에는 다이어리를 구입할 때도 이것저것 따졌는데, 요즘은 유행하는 디자인들이 이해가 안되서 그런가, 다이어리를 구입하는 기준이 아주 단순해졌다.

너무 화려하지 않은 속지와 표지, 먼슬리와 위클리가 한 달씩 번갈아서 나오는 구성, 그리고 위클리는 가능한 낭비되는 영역없이 최소 한 장을 7일로 나눈 넓은 공간. 어릴 때야 다꾸니 뭐니 나도 이것저것 찾아보곤 했지만, 요즘은 그냥 아주 가끔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을 사용하듯 내 하루의 기분을 한 컷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스티커 한 두개면 족하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요란스럽지도 않은.

 

아마 대부분의 성인들이 이런 기분을 느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 해 한 해 시간이 쌓여갈수록 오늘을 정의하는 숫자들이 그다지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다. (1월 1일이라고 거창하게 뭐 하는 것을 안 좋아하는 탓도 있고...)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떠오르고 저물어간다. 새해의 다짐같은 웃긴 짓을 하던 것도 벌써 몇 년 전인지. 그저 다이어리의 맨 앞장에 '올해의 단어'와 그에 대한 풀이를 적는 것으로 나만의 새해 환영의식을 하고 있다.

올해의 단어는 '신뢰'. 요즘 유난히 세상이 모두 거짓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는 거의 없어진 상태이고, 모두가 어떻게 옆사람의 등에 칼을 꽂을지만 고민하는 것 같다. "사기당했다"라는 말을 하는 나 자신이 무감각해지고, 어느새 또래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들이 하나의 무용담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돈을 받고 사기를 판매하는 세상인데, 지인이 나를 저버리는 일은 더욱 쉬운 일이겠지. 그래서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고, 귀찮고, 비즈니스적인 업무가 끝나면 애써 유지하고 싶지 않다. 같이 공동의 일을 할 때는 마치 죽고 못 살 것처럼 지냈던 사람도, 그저 두어달에 한번 문자나 주고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

 

어쨌든 그렇게 나의 2023년은 별일없이 지나갔고, 2024년도 별일없이 내게 왔다. 누군가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위해 무언가를 잔뜩 사거나 등록하며 보냈을 12월 31일. 나는 몰려오는 짜증에 잠을 청했다가 2023년이 3시간 가량 남았을 시간에야 눈을 떴다. 하루의 일을 수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다급함보다도, 1월 1일에 설레하며 그 보통의 하루에 특별함을 부여하지 못해 안달하는 분위기에 짜증이 난다.

불안과 강박. 그것은 이러한 특별한 날들의 들썩임만 없다면 훨씬 줄어들텐데. 그러면 이들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우울도 좀 드물게 찾아오지 않을까.

 

 

어쨋든 그렇게 현실도피성 수면과 함께 별일없이 2024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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