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ㅇㅇ..)'라는 마인드로 살아가며, 의외로 위아래 없는 망나니처럼 굴고 있어 나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서글프다는 감각. 사실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험치가 쌓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어린 사람보다는 나이가 많은 것이 성숙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딱히 내 나이를 서슬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 나이가 벌써 먼옛날에 결혼했다고 해도 "매우 이상"하지는 않은 나이가 되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안 가고, 못 간'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결혼생활에 들어갔다. 그래. 그러니까 숫자만 놓고 보았을 때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이고, 아직까지도 종종 나를 '학생'이라고 부르는 누군가를 만나면 묘한 불쾌감을 느끼는 시기가 되었다.
학생들을 보며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니 꼭 학생들이 대상이 아니더라도,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하는 말. "그 때가 좋을 때야.", "한참 좋을 때네." 라떼, 꼰대 같은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고 그들이 부러워서 하는 그런 말. (어린이가, 학생이 되고 싶어지면 그때부터 진짜 어른이라고 하던데....) 젊음이 서투름과 동의어였던 나에게는 퍽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고, 이왕이면 빨리 '끝'을 맞이하고 싶기에 지금도 딱히 나의 언어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말 속에 담겨있는 "어른의 애환"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학생들의 삶이라고 편하고 좋은 것은 아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수많은 선택지 앞에 놓여있고, 그들만의 어려움과 고통,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생 때의 "삶"이란 몇 가지 선택지를 고르는 객관식이라면, 성인의 "삶"은 사절지에 빼곡하게 써내야 하는 "주관식"이었다는 것.
게다가 '진위'를 떠나서 (뭐, 현실이란 녹록치 않고, 대부분 어른들이 하는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선택지에는 '희망'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불어넣어 진다. 이런 선택을 한다면 이러한 미래가 저런 선택을 한다면 저러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주변에서 계속해서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날의 우리는 다양한 직업들을 "꿈꿨고", 알고 보니 어떤 선택지를 고르던 도달하는 장소는 다들 비슷하다는 현실을 깨달으며 어른이 되어간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성숙'해지는 일 일수도 있지만, '희망'과 '가능성'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한 채로 망연히 지켜만 봐야 하는 '무력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온 것이다. 어떠한 답안지가 어떠한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점점 흐려지고, 새하얀 '인생'이라는 종이 앞에 서서 그저 멍하니 매섭게 몰아치는 "내일"들을 오롯이 맞고 있을 뿐이라는 것.
이것은 소위 이야기하는 '선택과 책임'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스스로 답안지를 만들어 채워가고 수많은 좌절 앞에서 이제는 꿈을 꾸고, 기대를 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리고 마는 "서글픔"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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