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자극하고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말들은, 꼭 의도대로 전달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생각했지만 "오늘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생활하라"는 말은, 공부나 업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것들을 던져버리고 오늘 나의 욕망에 취해 흥청망청 살라는 뜻으로 들린다. 미래가 없는 사람에게 미래를 위한 투자는 무슨 의미일까.
그와 유사한 맥락에서 인간은 영생이 아닌 필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더 열정적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말은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물론 인간에게 영생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굳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욕망하는 모든 것은 "그 기나긴" 영생 중 언제라도 할 수 있을테니까.
영생의 괴로움을 잘 그려낸 작품으로 '드라큘라'가 있겠다. 드라마 '도깨비'에서도 김신은 영생을 사는 벌을 받음으로써 고통받는 캐릭터로 그려진다(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의 고통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쨋든 일반적으로 영생이라고 함은 우리의 삶을 권태와 무기력, 무자극 속으로 몰아넣는 어떤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우리는 영생이 아닌 필멸의 삶을 살기 때문에 한 줌의 생이 빛을 다 하기 전에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그 어떤 것을 이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내가 해보고 싶은 모든 것을 그 짧은 시간에 욱여넣어 하나라도 더 많은 경험을 쌓은 후 죽음의 길을 걷기 위해.
그래서 우리는 늘 여러 선택지들 사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고통받는다. 불명확한 미래를 앞에 두고, 나의 모든 선택은 나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적은 기회비용을 치르고자 우리는 무수한 선택지 앞에서 발목을 묶인채 절망으로 잠식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필멸의 삶은 인간에게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도록 하는 자극제가 아니라, 얼마 되지 않은 한 줌의 인생조차 모랫가루가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듯 낭비하도록 종용하는 그런 걸림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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