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이진

출판사 : 자음과모음

출간일 : 2020.05.25

도서 유형 : 오디오북 (낭독 : 김보민)

읽은 기간 : 2023.09.01 ~ 2023.09.02

작성일 : 2023.09.03

최종 수정일 : 2023.09.03

 

 

도서 카페, 공장의 이미지를 그린 그림
책 위에 커피잔, 배경에는 고양이

 

오랜 기간 밀리의 서재를 정기구독해 오면서 반가운 점은, 밀리의 서재에서는 단순히 전자책 도서관의 기능을 넘어서 을 소재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을 꾸준히 시도하고 정착시켜 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가웠던 기능은 바로 '오디오북' 서비스이다. 전문성우를 기용해 녹음하는 오디언과 같은 서비스와의 제휴를 통해 보다 다양하게 읽을거리들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참 반갑다.

 

나는 귀로만 듣는 것에 약간의 어려움을 느낀다. 청각에 이상이 있다거나, 구화를 익혀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활자에 너무 익숙해진 이유인지, 청각으로 받아들인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데 불편하다. 게다가 오디오북을 듣는다는 것은 '마치 라디오처럼 다른 일을 하면서'의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시간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글을 쓰는 작업을 하는 나에게 '오디오북'은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보통은 자기 전 일종의 ASMR과 같이 책 한 권을 완전히 파악했다고 판단[...]될 때까지 무한 재생을 시켜두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뇌를 쓸 일이 적은 단순작업을 하면서 유튜브를 틀어두는 것보다 오디오북을 켜두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사장을 꿈꿔본 적 있나요?

카페 사장이 된다는 것은, 사실 아이 어른할 것 없이 누구나 인생에 한 순간은 꿈꿔본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현실을 알고 카페 사장이 우리가 상상해 온 그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리고 정확히는 "금전적인 벽"에 부딪혀 포기를 하게 된다.

 

굳이 카페 사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영업'이라는 것에 묘한 환상을 품곤 한다. [두 자영업자의 손에 자란 나는 그런 거 없다.] 특히나 그것이 '내 것', '내 일'이라는 명확한 무언가가 없는 청소년, 대학 새내기라면 어떨까. 내가 만든 어떤 것을 누군가가 좋아해 주고, 심지어 구매한다. '나'라는 자아가 형성되지 않아 불안한 시기, 그것은 세상에 나를 증명하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갈지도 모른다.

 

그것이 '카페 사장'이라는 꿈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든, 아니면 이 책의 4명의 아이들처럼 단순한 놀이에서 시작된 것이든.

 

 

힙, 힙, 힙... 대체 그게 뭔데...

나도 어느새 서른을 넘어섰다. 애초에 유행이라는 것과 동떨어진 생활을 해왔다지만, 이제는 더욱 유행을 체감하기 어려운 나이가 된 것이다. 언젠가 대학 선배의 손에 이끌려 '최근 유행한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공사판에 온 기분이었다. 겨우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쩐지 먼지가 날릴 것 같고, 음식을 먹다가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음식으로 떨어질 것 같은,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소위 유행한다는 카페를 가보지 않은지도 꽤 긴 시간이 지났다. 가끔 유튜브에 풍자 영상을 보면서,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의 유행이 치사량을 넘어서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 소위 레트로가 유행하면서 버려진 공장을 그대로 사용해 인기를 얻은 한 카페의 기사를 읽은 적은 있었다. 이 책이 2020년도에 출간되었으니, 그때 즈음의 카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중교통은 버스가 전부, 서울까지 거리는 버스로 왕복 4시간. 부모들이 아이가 '비싼 대학에 갈 것'을 걱정하는 촌동네, 오동면. 네 명의 고등학생 소녀들이 큰 맘먹고 서울의 유명 카페를 방문했다가 문득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된다. '우리 동네에 버려진 빈 공장 많잖아. 딱 그런 분위기 아니야? 우리가 각자 집에 있는 물건 가져다가 카페 차리면 되겠네.' 그렇게 어른들은 아무도 모르는 네 소녀의 '카페, 공장'이 문을 열었다.

 

사실 그저 자신들만의 아지트 정도로 생각했다. 종종 자신들이 커피를 타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그런데 학교 학생들이 하나둘 방문하고, 각종 SNS의 입소문을 타면서 어느새 '카페, 공장'은 핫하다는 '그' 카페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현대 판타지?

요즘 웹소설이 유행하면서 '판타지' 장르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극히 현실을 기반한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판타지 소설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 도달했다. 그것은 내가 이미 현실을 알아버린 어른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소설이 현실 위에 세워진 비현실적 배경을 가졌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운영하는 카페는 좁은 동네에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순풍에 돛을 단 듯 기적 같은 세 달을 이룩한다. 물론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소하게는 진상손님부터, 모두를 두렵게 만든 일진 무리의 등장, 카페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는 '법적으로 허가가 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생기는 각종 의문들까지. 고등학생 4명이 재미 삼아 버려진 공장에 만든 아지트가 유명 카페로 둔갑하는 판타지 속에서도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듯 주변 카페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각종 문제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고, 하나하나 해결책을 찾아가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나갔다. 믹스커피를 타주는 것에서 핸드드립 커피로, 외부음식 반입을 대비한 브라우니는 어느새 '오픈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특제 브라우니'가 되었고, 무료로 나눠주던 엽서는 카페를 찾는 4마리의 길냥이들을 모델로 한 캐릭터 스티커 제작까지 이어졌다.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땅부자 아저씨'이다. 판타지 같은 이야기지만 하나하나 어려움을 헤쳐가는 네 소녀를 응원하며 책을 읽어가면서도, '어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그리고 결국 사단이 벌어졌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카페, 공장'을 직접 만든 것이라는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고, 카페 사장 번호를 달라며 아이들을 나무랐다.

 

그리고 꿈같았던 모든 이야기는 마지막 장 '땅부자 아저씨'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산산조각 나게 된다.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다. 그러니 너네는 이런 바보 같은 꿈은 꾸지 말고 앉아서 공부나 열심히 하렴. 같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이 소설이 마냥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면 갑자기 나타난 '땅부자 아저씨'가 맘씨 좋은 사람이어서 부모님들을 설득해 주고 아이들은 계속해서 카페를 꾸려갈 수 있었다와 같은 허망한 해피엔딩을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땅부자 아저씨는 '가진 것들이 더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땅부자 아저씨는 다짜고짜 아이들에게 '카페 주인'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카페를 열고 운영을 했다는 말에, 아이들의 부모님을 모두 호출하고 그렇게 아이들은 카페에서 쫓겨나게 된다. "카페 공장을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아이들은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인터넷에서 '불법점유'와 관련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률을 찾아내고,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다시 카페를 점거한다.

 

하지만 이미 판타지 소설은 끝났다. 아이들의 협박 아닌 협박에 '땅부자 아저씨'는 그렇다면 법대로 해보자며 '식품위생법', '부당이득' 등을 언급하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얼마나 아득하게 먼지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결국 아이들은 사과를 하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번 돈을 배상하기로 약속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처음으로 현실의 벽 앞에 선 아이들'에게 얼마나 막막한 일이었을까. 하지만 진짜 현실은 더욱 잔인했다. 얼마뒤 땅부자 아저씨는 '카페, 공장'을 정식적으로 오픈했다. 신식의 가전과 기기들을 갖추었지만, 아이들이 운영하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만든 로고와 캐릭터까지 그대로 사용한 굿즈까지 출시했다. 엄연한 표절이었지만, 저작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었다.

 

 

환상에 속지 않게, 현실에 좌절하지 않게

'카페, 공장'은 그렇게 사라졌다. 하지만 석 달의 경험은 아이들의 미래에 명확한 흔적을 남겼다. 아이들은 카페를 운영했던 경험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보다 또렷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찾아간 아이들이 다시 한 곳에 모여 그날을 추억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소설이지만, 마냥 "꿈을 꾸어라"같은 허망한 환상만 심어주는 것도 그렇다고 시작도 하기 전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냉혹한 현실에 질리게 만드는 것도 아닌 작품이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환상을 실현해 냈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 비록 현실에 부딪혀 바스러져버린 환상이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방법을 배웠다. 어린 날의 환상이 "그게 아니었네"하고 깨어진 것이 아닌 각자의 방법으로 그 흔적을 이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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