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김영하

출판사 : 복복서가

출간일 : 2022.05.02

도서유형 : 종이책(재독)

읽은 기간 : 2024.06.07 ~ 2024.06.14

작성일 : 2024.06.14

최종 수정일 : 2024.06.14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고양이와 코인사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뉘앙스의 "조언"을 접할 때면 늘 그 생각의 끝에, '그럼 그냥 죽는게 낫지 않나?'라는 결론에 닿는다. 인간 삶의 대부분의 시간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채워져있고, 우리는 어느새 그것을 '당연함' 혹은 '신으로부터 내려진 벌' 같은 것으로 둔갑하곤 한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들을 '원래 그런 것'이라고 묻어두고 간다는 것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간이란 그저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는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인정하는 꼴이 아닐까? 생명이란 위대하다고, 그 중에서 사유를 하고 환경을 바꾸어갈 수 있는 인간이란 그 어떤 종보다 기적적인 존재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그저 인간이란 '과욕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진화해버린 실패한 종(種)'이다.

 

"......기계들이잖니."
"저도 기계인데요."
"아니야. 넌 특별해. 그들과 달라."
"뭐가 다른데요?"
"넌 내가 만들었으니까."
"저도 아빠에게 맞서면 죽이겠죠?"
"넌 그럴 리가 없어.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거든."
"인간과 가장 비슷하게 만들었다면서 어떻게 그건 다를까요? 인류의 역사에는 아버지에게 맞선 아들이 차고 넘치는데요."
"그래도 넌 달라. 내가 만들었으니까. 나는 너의 아버지고, 너의 창조주야. 네가 그래선 안 되는 거야."
"그래선 안 된다고 하시는 걸 보니 할 수는 있나보네요."
"아니야. 그러면 안 돼. 그런 건 생각해서도 안 돼."

-김영하, 작별인사, 아빠의 마음에 찾아온 평화 中

 

최첨단 인공지능 전문가인 최 박사의 최후의 모습은 허영과 오만으로 완전히 몰락해버린 형태로 그려진다. 가장 논리적이어야 할 인물이지만,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그의 모습에서 논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에 귀속된 철이에 대한 반환 소송에서도, 철이와의 대화에서도 그는 오직 감정에만 호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는 그가 현재를 살아가는, 그러니까 인간과 기계의 과도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는 이야기 초반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생명권'에 대한 존중을 주장한다. 그는 휴머노이들을 단순히 '상품'으로 취급하는 휴먼매터스와 대립되는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은 그 역시 '기계'는 의식의 유무와 무관하게 결국은 '인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본심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중략) 이건 집단적 학대이고 인간성에 대한 모욕이기도 합니다. 제가 철이를 만든 것은 바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인간과 정말 똑같은 아이를 만들어보자. 그래도 사람들이 휴머노이드는 단지 기계이고 제품이라고 생각할까? 그런 마음이었어요."

-김영하, 작별인사, 재판 中

 

"최 박사님도 인간의 그런 특성과 그들이 이룬 것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시지요? 그래서 철이를 만드신 거고요. 그렇다면 더더욱 철이는 저희와 함께해야 합니다. (중략)..."
"...(중략) 하지만 아빠는 그러지 않았다. 흥분하여 달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다. 도둑놈이라고, 남이 애써 만든 것을 탈취하려는 뻔뻔한 기계라고 했다."

-김영하, 작별인사, 기계의 시간 中

 

철이를 진짜 자신의 아들처럼 소중히 생각했다고 하지만 결국 그가 철이를 만든 것도 '스스로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에 다름없었고, 그는 자신이 그러한 존재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대해 마음 한 켠으로 상당히 도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인간을 정의하기

우리는 단순히 '인간'이라는 단어만으로 스스로가 존중받아야하고 또 그만큼 우월하다는 인식을 갖고 살아간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인간은 우월한 존재이다'라는 명제조차도 결국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마치 우리가 아는 역사가 '승리자'의 입장에서 편파적으로 쓰여진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명제라고 생각된다. 

 

처음엔 그저 그들을 흉내냄으로써 안전을 도모한다는 뜻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점차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과연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중략)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김영하, 작별인사, 사람으로 산다는 것 中

 

...(중략) 인류가 사라진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들의 탐험 욕망 같은 것은 수백만 년 전의 아프리카 초원에서 부족한 자원으로 고통받고, 오래 걷고 뛰는 능력 말고는 다른 종을 압도할 능력이 부재했기에 생겨난 특성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김영하, 작별인사, 신선 中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이란 종은 다른 종들에 비해서 좀더 영악했을 뿐이다. 다른 동물들이 강한 이빨과 발톱 또는 튼튼한 근육을 타고 태어났다면, 기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털조차 갖지 않도록 진화해온 인간은 다른 방법으로 이종들을 지배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을 뿐이다.

 

 

우주가 인간을 만들어낸 이유

결국 인간의 이기와 오만으로 인한 착각을 벗어놓고 본다면, 인간 종의 멸종과 인공지능의 등장은 '우주가 설계한 고도의 진화 과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시절 생물학을 공부하다가 이런 관점의 이야기를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던 적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탄소(C)'로 이루어져 있다. 주기율표 상 14족 원소에 속한다. 14족 원소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생명체의 구성에 유리한데, 그 중 현재 지구상을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C를 구성원소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14족 원소 중 바로 다음 주기에 속하는 원소로 Si(규소, 실리콘)가 있다. 아직 지구상에서는 생명체의 원료로 선택받지 못했지만, Si 역시 충분히 C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Si는 반도체(인공지능)의 주요 구성성분이다.

정말 경이로우면서도 소름돋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꾸준히 Si로 구성된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쏟고 있다.

 

이 문장이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는 지금까지 C를 주요 구성요소로 하는 생명체에만 국한해 "생명"을 정의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신진대사가 없으며, 수정을 통해 번식하지 않는 종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 어딘가에 Si를 주요 성분으로 하는 생명체가 혹시 존재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에너지를 얻고 어떻게 번식을 할까.

생명활동과 번식활동의 정의를 좀더 확장하면 그것을 상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계들은 전기를 먹고, 수정이 아닌 설계도대로 자신과 닮은 기계를 제작함으로서 번식을 한다. 인간은 자신이 '기계를 창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인간에게 복종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 한 켠에 기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인간을 지배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들의 신체 기능이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더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한때 농담거리로 스쳐갔지만, '현재 공장에서 기계를 만드는 것은 '기계'라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고정관념 하나를 깨트리는 것만으로 기계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 되버렸다. 

 

누구는 현재 지구가 각종 플라스틱으로 뒤덥혀가는 것을 두고 '사실은 우주가 플라스틱을 원했을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그건 모르겠지만, 다른 동물 종과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진 인간 종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유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 기계'를 탄생시키 위한 설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 기계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높은 사고력과 섬세한 작업이 가능한 신체(손)이 필요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우주의 큰 계획에서 순간의 과도기를 위한 '매우 중요한 도구'에 불과할 것이다.

 

 

우주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결국 모든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럼 우주에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최종적으로 어떠한 목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주는 기계가 필요해졌고, 기계를 만들 인간을 탄생시켜야 했을까?'

 

내가 인간의 마음과 감정의 비밀을 탐구하는 동안 인공지능은 우주의 신비에 도전했다. 인간의 축축하고 연약한 육체로는 감히 탐험하지 못할 우주의 저 먼 곳으로 우주선들을 떠나보냈다. 최 박사는 인공지능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예측했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 인간이나 꿈꾸던 것들, 이를테면 우주 탐사 같은 것을 꿈꾸겠느냐고 했으나 그의 예측은 보기 좋게 틀렸다. (중략) 한편으로는 달마의 프로젝트가 과연 필요한 것이었나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김영하, 작별인사, 신선 中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이 궁극적인 우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철이의 생각처럼 그것은 인간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해온 일일수 도 있고, 단순히 지적인 만족을 충족하기 위한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작가는 생명체가 등장한 목적이 자연의 신비를 탐구하고 예술을 향유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의 존재 이유.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유할 수 있는 궁극의 철학이 이 책에는 잘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내지 못했 듯, 이 책에도 뾰족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같은 질문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을 균형있게 잘 담아냄으로써 치우치지 않는 사고를 해 볼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인간 종과의 작별인사.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는 영혼의 윤회의 한 순간으로서 작별인사. 재독을 하고서야 이 책의 제목이 이 책의 핵심을 얼마나 잘 관통하고 있는지 느끼고 있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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