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박건우

출판사 : 길벗

출간일 : 2022.10.31

도서 유형 : 전자책

읽은 기간 : 2024.09.18 ~ 2024.09.20

작성일 : 2024.09.29

최종 수정일 : 2024.09.29

 

 

 

 

 

 

 

미니멀리즘 = 깔끔한 디자인?

우리나라에서 미니멀리즘이 유행한지는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인테리어와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은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멋스러움을 느끼게 하고, '나 이렇게 의식있는 사람이에요'라는 것을 가장 쿨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모두가 '소유'의 충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듯 보이기까지 하는 그들의 모습은 고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종종 그들의 글을 볼 때면 나는 그들이 지향하는 생활양식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곤 했다. 강박적인 비움.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듯 내세우면서 누리고 있는 모종의 우월감. 진정 '비움'이 주는 홀가분함의 행복감을 위해 그러한 생활방식을 선택한 것인지, 남들에게 보이는 '힙'한 내 모습에 취해서 그러한 모습을 꾸며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오히려 그들은 '비움'이라는 행위에 숨겨진 '강력한 채움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한국의 미니멀리즘 유행은 내가 생각하는 '필요 최소주의'와 조금 다른 성격이었다. 친환경 세제들, 깨끗한 주방 타일과 흰 벽, 라벨만 붙인 상표 없는 유리병을 보여 주면서 미니멀리즘이라고 표현했다. 그 속에서 미니멀리스트들은 물건을 능숙하게 수납하는 수납 전문가이자 청소 전문가로 보였고, 요리에는 대부분 아보카도를 곁들였다.

-박건우, 나는 미니멀 유목민입니다 中

 

 

실제로 미니멀과 관련한 컨텐츠를 찾아보면 대부분이 '비움'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고 있거나, 깔끔한 디자인의 물건을 판매하는 브랜드를 추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분명 미니멀리즘의 핵심은 깔끔한 인테리어에서 오는 시각적 만족감도, 덜 소비하는 것에서 오는 경제적 절약도 아닐텐데.. 우리나라의 미니멀리즘이란 그저 짠테크의 연장선에 있는 어떤 행위에 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을 혼란하게 하는 알록달록한 색상들을 덜어내고 그곳을 흑백의 모던함으로 채우는 것이 전부라면, '멀쩡한 물건 버리는 게 미니멀 라이프야?'라는 말을 들어도 반박할 수 없는 건 당연할 것이다.

 

 

비움이 주는 행복과 소유가 주는 행복

미니멀리즘의 유행만큼이나 다양한 '버리기'의 방법들이 공유되고 있다. 소유도 하나의 중독이고, 그것을 단번에 끊어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물건에 '추억'이 담겨있다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생각의 묘한 죄책감과 후회감에 시달릴 수도 있다.

 

노견과 함께 살던 2층 고택은 현관 분위기부터 범상치 않더니 집안 곳곳이 재즈 레코드 진열장으로 가득했다. 이 모든 걸 한 사람이 수집했다고 하기에는 예사로운 양이 아니었다. 
...
생을 바쳐 수집한 물건에 대해서는 직접 책임지고 '가져가 줄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표현이 의아하다가 곧바로 이해했다. '가져가 줄 사람'이란 '양수인'이 아닌 '수거인'을 뜻하는 것이었고, 값을 따지지 않았다는 것을. N도 나도 아내도 서로 다른 뜻의 '아깝다'라는 반응이 앞서다가 다음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들을 소유하는 동안 행복했어."

이 짧은 문장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소유'와 '행복'을 연관해 보지 않았다. 오히려 적게 소유할수록 자유롭고, 그것이 또 다른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믿어 왔다. 나의 미니멀리즘은 주관적인 경험이 압도적이면서도 펵 객관성을 띤 것처럼 말해왔다. 그런데 소유해서 행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돌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행복을 줄이라고 말했던건 아닌지, 떳떳한 소유를 부정해왔던 건 아닌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
나는 그저 소유를 줄였더니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건 자의식이 지나쳐 혼자 질주했다는 건 아닐까.

-박건우, 나는 미니멀 유목민입니다 中

 

 

그 어떤 것에도 '완고한' 객관성과 '확신할 수 있는'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에서 한결같이 '정답'의 존재를 찾고, 그것을 따르길 원한다. 그리고 아마 대중이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의 정답은 '버리기'인 것 같다. 미니멀리즘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들은 자신이 '물욕'의 노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추억을 도려내고, 진정한 행복까지 덜어내야 하는 극단적인 '정답'에 질려버린 것은 아닐까.

 

내 경우 몇 백만 원짜리 물건이 필요 없어지지 마자 미련 없이 이별했다. 그런데 벼룩시장에서 200원 주고 산 곰 인형은 이별하지 못했다. 주운 천 쪼가리로 만든 손가락 인형도 마찬가지다. 다 큰 어른에게 인형이 필요 없다고 말한들 나에게는 무섭게 행동하는 인간보다 인형이 더 각별한 존재다. 모든 소지품 중 유일하게 추상적인 기능을 할지라도 이별할 마음은 없다. 미니멀리스트는 뭐든 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박건우, 나는 미니멀 유목민입니다 中

 

**혹자는 이 책의 저자가 패션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모든 자신의 짐을 배낭에 넣어 다니는 여행작가로 이 책을 쓸 당시 75개의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

 

 

소유가 가져오는 불행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미니멀리스트'가 추구하는 '비움과 소유'란 개개인의 '진정한 행복'을 기준으로 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창고와 서랍 안에는 '언젠가'를 기약하며 쳐박혀있는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 통제를 벗어난 소유물은 단순히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넘어서 '심리적 압박'으로 돌아온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개인의 역량에 맞게 갖추어진 것이라면? 그곳에 존재함을 알고, 존재만으로 나를 풍족하게 하며 매일 같이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타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식품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그것이 '똑똑한 소유'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소유에서 얻어야 할 행복은 타인에게 자랑하고, 보여주고, 비교하며 상대적인 만족을 얻기 위한 허영이 아닐 것이다. 그러한 물건들은 타인과 비교되지 않으면 결코 나를 충족시킬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그것을 보관하기 위해 또 불필요한 자원을 쏟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즐겨 사용하지 않고, 즐겨 찾지 않는 물건. 그것들을 비움으로써, 그들이 주는 책임과 부담, 가짜 행복들을 떨쳐버리는 자유가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진짜 비움의 미학이 아닐까. '실천'의 앞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단어가 '언젠가'인 것처럼, '소유'의 앞에서도 '언젠가'라는 단어를 가장 경계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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