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 애나 렘키
출판사 : 흐름
출간일 : 2022.03.21
도서유형 : 전자책(밀리)
읽은 기간 : 2024.06.15 ~ 2024.06.18
작성일 : 2024.06.20
최종 수정일 : 2024.06.20
부디, 이 책의 원제가 '도파민네이션'이 아니었길 바란다
책을 중간정도 읽었을 때 나는 강력한 의문에 휩싸여야 했다. 마지막 장을 채 덮지 못하고 책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결국 서점에서 이 책이 어떠한 홍보문구를 달고 판매되고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소위 "도파민 인류"라고 불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굳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그 이유는 "디지털"로 공통되는 중독에서 벗어나보고자 하는 발버둥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책을 팔고 돈만 벌면 다른 건 아무 상관없는 우리나라의 출판업계의 현주소에 다시 한번 절망하고 말았다. 대체 이 책에 붙어있는 홍보문구 중 이 책의 내용과 실질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단지, 이 책의 수식어들에 넘어가 잘못된 기대를 품고 이 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없길 바라는 마음이다.
덧. 그리고 원제 역시 '도파민네이션'이었다.
스마트폰, 음식, 음주, 쇼핑... 당신은 어디에 중독되어 있나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목록들은 매우 중독적이고, 그래서 때로 우리는 이것들을 끊어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여기에 해당된다면, 일단 이 책을 살짝 내려놓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느낀 '도파민네이션'은 저런 일상적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치명적인 목록들에 중독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넓게 봤을 때 중독Addiction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도박, 게임, 섹스)이 자신 그리고/혹은 타인에게 해를 끼침에도 그것을 지속적,강박적으로 소비,활용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中
이 책은 넓게 봤을 때 중독과 도파민이 어떠한 기작으로 작동하는지를 설명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이 기작을 활용할 수 있을지를 설명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분명 세상이 (썩 좋지는 않은 방향으로) 변해하고 있음을 실감할 것이며, 그것은 스스로 역시 해당된다는 성찰에 도달했을 것이다. 실제로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서 편의만큼이나 각종 중독에 위험성이 높아졌다.
과거 어른들은 TV를 '바보상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언제 어디든 조그마한 '바보상자'를 휴대한 채로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세상과 쉽고 빠르게 연결될 수 있고, 유튜브를 포함한 다양한 숏폼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단 1초의 지루한 시간도 없이 "알차게"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빈틈없는 생활의 끝에 허무한 자책의 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귀여운 중독[아닙니다.]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이 책의 저자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더욱 엄청난 것에 중독된 사람들이 쏟아지고 있다. 바로 마약이다. 우리나라 역시 이제는 '마약 청정국'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접근성이 좋아졌지만, 애초에 접근성이 않았던 미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난 모양이다. 이 책이 출간 즉시 『뉴욕타임즈』 1위, 아마존닷컴 35주 연속 베스트셀러였던 것을 보면.
"그래도, 이러한 수식어가 붙은 이유가 있을거야"라는 말로 책의 7-80%를 읽어본 결과는, 사이비나 사기꾼들이 이런 대화기술(?)로 사람을 낚아먹더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마약으로 시작해서 마약으로 끝나는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책이다. 분명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있는 것보다 더 몰입감이 떨어진다고 할까.
물론 그렇다고 저자가 마냥 사기만 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쨋든, 모든 중독물질들은 '도파민'이라는 단어 아래에 하나로 묶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방안을 최선을 다해서 잘 조리하면 각자 자신의 크고 작은 중독들을 해소하는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책의 중반부 정도에 나오는 DOPANIME은 예시를 빼고 설명만 읽은 후에 삶에 적용한다면 단순히 결심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해결책과 도움을 원했다면 차라리 자기계발서나 철학책을 읽어보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인문"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에세이적인 특징이 강하고, 실용서가 아닌 전문서적이라고 말해주기에는 중언부언하고 명확하지 못한 이론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책에 담겨있는 기본적인 이론이나 지식들은 충분히 도움이 될 내용이고, 나역시 초반에는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이 책의 포지션을 생각한다면 누구에게도 추천하기 어려운 애매함이 있다. 음, 마치 일반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종교서적 같다고 할까.
당신의 이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건 아닌가요?
내가 이 책을 소개하는데에 있어서 초지일관 강한 단어들을 선정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이 책의 저자가 그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지식과 자신의 관점, 이론 등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평한 시선에서 양쪽의 주장을 명확하게 살피고, 특히 자신의 주장에 대해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상대의 주장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4킬로미터 높이의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걸 '자연적 도취감'이라고 부르긴 참 어렵지만, 전체 결론에 대해선 매우 동의한다."라는 말로 상대를 까내리면서 자기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참된 학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도 "4킬로미터 높이의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극단적인 사례(차가운 물에 들어가는 것의 짜릿함이 좋아 고기냉동고를 구입한 사례 등)들 뿐이고, 그녀의 주장이 시작된 것도 "쾌락 쪽을 누르는 모든 약물은 중독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약물들이 실제로는 응당 작용해야 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거나, 길게 봤을 때 정신 질환을 악화시킨다면?"과 같이 가설과 추측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 뿐이다. 그저 극단적인 몇 가지 사례만 나열한 후에 귀납식 결론을 내리고, 자기계발서의 양식을 벗어나지 못한 뻔한 조언으로 마무리되는 책을 어떻게 좋게 포장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녀는 자신이 정신과의사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신질환 치료제'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그것이 진짜로 필요한 누군가에게 치료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올바른 수준의 처방임에도' 그 약물이 '뉴스에서 나온 마약성 물질'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처방해준 의사를 천하의 몹쓸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향정신성 약물이 아닌 약물들도 우리 몸의 각종 면역, 호르몬 체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독극물일 뿐이다. (특히 간은, 매일 매일이 죽을 맛일테다.)
물론 정신과 약물에 대해서 "상담치료가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 구조상" 불필요하 과잉 의존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마주보고 약물과 비약물의 병행해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치료의 모든 주도권은 '전문가'에게만 쥐여주고 당장 죽겠다는 환자에게 '그거 마약이야'라며 약을 빼앗아버리는 것은 그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그런 시선에서 나는 더욱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로 관심을 받는 일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 덜 위험한 중독으로 옮겨가는 방법이 아니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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