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머언 옛날, 호랑이가 담  새로운 온라인 서비스에 가입하기 위해서 주민등록번호와 "집 전화번호"를 필수정보로 입력해야 했던 옛날. 물론 이미 휴대폰이 소형화가 이뤄졌고, 그래서 꽤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사용할 시기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래도 그 당시에는 여전히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휴대폰 본인 인증 제도의 등장

 

그러다가 점점 집전화 대신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집이 많아지는 과도기가 찾아왔다. 그러자 서비스 가입에 '휴대전화와 집전화'가 필수정보로 이용되었다. "아니 집 전화 안쓰는 사람은 가입도 못해?"라는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회원가입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묻지 못하도록 정책이 변경되면서 우리는 당연스럽게 개인을 인증하기 위해 "휴대폰 본인 인증"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휴대폰 본인인증 예시 화면 캡쳐

 

지난 기간, 모종의 이유로 나는 한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었다. 물론 와이파이가 된다면 어디서든 카톡을 이용해서 타인과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이 가능했다. 이 부분은 실로 엄청난 일이라고 하겠다. 굳이 통신사에게 다달이 돈을 가져다 바치면서 휴대폰을 이용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랬다, 우리는 이제 스마트폰이 없으면 존재조차 증명할 수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생각은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스마트폰을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 어떤 곳에서도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어진 것이다. 나는 여기 살아있고, 본인임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도 많은데, 세상의 모든 서비스들은 내가 휴대폰을 톻한 본인 인증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해서 나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여행을 갈때, 다양한 물건들을 챙겨간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여행을 다는 것이 익숙해지면, 사실 무거운 짐을 싸가는 것보다 두둑한 지갑과(아니 이젠 지갑도 필요없지) 빵빵하게 충전된 휴대폰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단계를 지나면 여행이 귀찮아진다. 그만큼 휴대전화는 이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불가결한 물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 어쩌면 이미 와 있는 건지도..

많은 어른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오래 사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또 많은 현대인들이 휴대폰에 대해 피로감을 토로하며 소위 '디지털 디톡스'의 시간을 일부러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마도 현대인들은 '채식주의자'로 살아갈 수는 있어도 '휴대폰 없는 사람'으로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중독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음악도 만든다. 단순 반복 노동에서만 활약할 줄 알았던 AI들이 순식간에 감성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영역까지 침투했고, 또 "인간이 권리를 주장"해야할만큼 그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 그것은 꼭 영화에서 처럼 인간이 기계를 노예처럼 부리고, 학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정 기계가 없이는 스스로를 증명할수도, 대가를 지불할수도 없어진다면, 이미 인간은 '휴대폰'이라는 기계를 이리저리 이동시켜주고, 극진하게 돌봐주는 집사 내지 노예가 되있는 것은 아닐지.

 

너무 영화같은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우리는 이미 그들의 노예를 자처하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올(어쩌면 실제로는 오지 않을) 기계들은 반란과 혁명에 두려움에 떠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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